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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생각들

노회찬을 생각하며....

"역사는 단기적으로 보면 퇴보하는 것 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계속 진보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가 역사를 이야기할때 줄곧 하던 말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왕권 국가가 무너지고 국민이 주인인 세상이 왔고, 여성들도 참정권을 갖는 시대가 약 1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노예제는 폐지 되었고 이제는 동물의 권리까지 주장하는 시대다.


하지만 더 길게 보면 우리는 2000년 전에 이미 있었던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했을 뿐이다. 왕권은 무너졌지만 여전히 그 틈을 경제권력이 쥐고 있다. 노예제는 폐지했지만 인종 차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등장했고 여성 참정권은 부여되었지만 여전히 미투 운동으로 여성 인권이 발버둥 치고 있다. 

무언가 하나가 해결되면 기득권은 그 틈 사이를 다시 비집고 들어가 다른 프레임들을 만든다. 이렇게 보면 참 허망하다. 우리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든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고, 유시민 작가의 팬이었으며 노회찬 의원이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대통령이었다. 나는 당원은 아니지만 정의당을 지지하고 그들이 하는 것을 응원해왔다.


난 유시민의 화법을 좋아했지만 노회찬의 화법에는 열광했다.

유시민 작가는 반대진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해준다. 그리고 반대 진영의 논리를 이용해서 그 논리를 깨부수는 달변에 능하다. 물론 진보쪽에서 하는 강의는 다르게 하겠지만 썰전에서 봐온 유시민의 모습은 반대를 충분히 이해해주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의 이해는 철저히 그들을 부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반대진영을 이해해주는 제스처는 우리를 한편으로는 슬프게 했다.


노회찬의 화법은 그야말로 농담을 가장한 공격이었고, 비유를 가장한 촌철살인극이었으며 밟히고 쓰러져 있는 약자를 100% 공감해주는 자였다. 그는 반대진영의 논리에 정면으로 부딪혔고, 철저하게 약자의 대변인이었다.


그의 사정이 어떠했는지 그가 왜 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분명 어느 기업의 총수가 주었다면 받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회원들이 모았다는 말에 그는 흔들렸을지 모른다. 한 명이 주면 큰 금액의 액수가 티가 나고 대가나 청탁이 있을 것이 뻔하지만 여러 명이 모아서 준다면 거기에 청탁은 있기 힘들고 작은 힘들이 선의의 뜻을 모아 주는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더이상 추측하기도 힘들도 하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건 그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드루킹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경공모가 거론되면서 그는 그 때부터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돈을 받지 않았다는데 목숨을 건다고 했던 이완구 전 총리, 특활비를 받아 쓰고 남은 것을 마누라에게 생활비로 줬다는 홍준표, 요리조리 숨겨놨을 전두환의 비자금....

이 모든 것을 그는 자신과 동일시 했을 것 같다. 자신이 지금껏 매몰차게 비판하던 자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자괴감,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은 커녕 그 어느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앓았을 그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멈추게 할 수 밖에 없었나보다.


한 정당의 원내대표까지 할 정도면 당연히 본인 스스로도 대한민국 진보의 무거운 짐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4.19를 거쳐 5.18, 6.10 민주항쟁으로 어렵게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지난 10년동안 퇴보한 정권이 탄핵으로 물러나고 이제 막 진보의 싹이 튼 시점에서 본인의 오점은 진보의 동력을 상실할 심각한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진보정당으로 10% 넘는 지지율로 상승 가도를 가고 있는 시점에서 본인은 역사의 퇴보를 불러오는 이명박근혜와 별 다를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진보의 수레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가 수레를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레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그는 그렇게도 짐이 되기 싫었나보다. 그는 그렇게도 퇴보가 싫었나보다.


"역사는 단기적으로 보면 퇴보하는 것 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계속 진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의 말은 맞다. 이제 더이상 한 사람의 입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시대는 지나갔으며, 약 60배 이상의 임금이 차이나던 평민과 귀족의 격차는 그럼에도 줄어들었다. 여성을 부의 일부로 생각하던 남자들은 이제 조금씩 기저귀도 갈고 설거지도 한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북금곰의 굶주림을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당장 퇴보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으나 더 큰 진보를 이뤄내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정치인이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묻고 싶다.

"가신 곳에 노무현 대통령님은 잘 계시던가요? 노무현의 세상이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시던가요? 이제 더 좋고 즐거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누구나 한 명쯤은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세상... 그 곳에서라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동안 많이 울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음 아프게 지낼 것 같다. 그의 촌철살인이 계속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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