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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책

[인문] 열한 계단, 지대넓얕 진행자 채사장의 인생 이야기


저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것은 참 재미있어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상황에 마주쳤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죠.

이 책을 분류할때 어떤 장르로 해야하나 잠깐 고민했었습니다. 어쩌면 그냥 인생 이야기를 챕터별로 주제를 정해서 서술해 놓은 수필 같기도 하지만, 그의 장점이자 특징인 여러가지 넓은 주제를 얇게 한번 파보는 것은 이 책에도 여지없이 잘 드러나 있기에 인문학으로 분류를 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가독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저도 조금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요. 이 책을 읽는 시간 만큼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줄 만큼 잘 빠져드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렇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여러가지 다양한 지식을 잠깐 훓어보고 지나가는 형식이거든요. 그는 마치 "세상에는 이런 것들도 있어. 왠지 내가 하는 이야기가 끌리니? 그럼 네가 직접 찾아서 더 파고들어봐!" 라고 말하는 것 같죠. 그래서 깊이를 원하시는 독자라면 잘 맞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뭔가 지식을 쌓는다는 기분보다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채사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들었고 어떤 편은 2,3회 심지어 10회 가까이 반복해서 들은 것들도 있습니다. 처가에 얹혀 살 때는  도시가 작아 한국인들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해서 팟캐스트를 듣는 것이 마치 한국 친구와 소통하는 듯한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저는 채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책들을 읽으면서 그가 살아왔던 인생을 듣고 그를 이해하니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동의할 수는 없지만 존중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채사장이 썼던 지난 책들과는 달리 그의 인생 이야기를 자신이 만나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던 사건,책,노래 등을 통해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되었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채사장은 서두부분에 자신이 책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이 부분은 채사장이 언젠가 티비에 나와서 강의를 할 때도 했던 말이었습니다.

크게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눕니다. 

1. 익숙한 책을 읽는 사람과 2. 불편한 책을 읽는 사람

1번은 자신이 잘 알고 있거나 전공한 분야를 계속해서 깊이 파는 사람이고, 2번은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책들도 읽어가며 그들을 이해해보기도 해보고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사람이지요. 채사장은 이 둘 중이 뭐가 더 좋고 뭐가 나쁘다라고 말 할 수 없다라고 하지만 그는 2번의 방식대로 책을 읽어왔으며 그 불편함을 이기고 좀 더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의 꼴등을 바라보던 본인이 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 대한 차이점을 본인 나름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은 이유는 반대로 그들이 너무나 성숙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영혼이 받아들이기에 정규교육의 단조로움은 너무나도 하찮다. 학생들을 똑똑하다. 그들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진리의 문제, 사회 정의의 문제, 존재의 문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놀랍도록 심오하다.반면에 현행 교과는 그들이 바보가 되기를 원한다.......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나이에 자신의 욕구를 억제할 줄 알고, 친구나 가족의 안타까운 삶에 무관심할 정도로 자신의 좋은 성적을 위해 반복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기형적인 학생만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열한 계단, 첫 번째 계단, 문학_죄와 벌 중에서-



그는 죄와 벌이라는 문학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탐구를 시작합니다. 문학이 자신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줄 것이라는 확신때문이죠. 채사장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카테고리를 탐구하고 거기서 답을 찾지 못하거나 다른 계기가 있을때 다른 카테고리를 넘어가는 식으로 인생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이 웃지는 않습니다. 물론 웃긴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도 않지만 사람들이 이 부분이 웃긴부분이라고 읽어보라고 해도 문자로는 생생함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웃질 않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빵 터지게 웃은 건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소개해드리지요.


돌이켜보면 나는 매우 부담스러운 신입생이었다. 나이도 한 살 많은데다가 외모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항상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했고, 여드름이 많았다. 옷차림은 가관이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거의 매일 검정색 츄리닝 바지를 입었는데, 특히 발목 부분을 조이는 형태의 츄리닝이었다. 거기에 광택이 나는 검정색 구두를 신었다. 윗옷은 계절에 따라 반팔, 긴팔, 점퍼를 조합했고 보통은 동아리에서 받은 옷들이었다........ 발목을 조이는 츄리닝과 구두의 조합은 왜 안되는지, 누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도대체 알지 못한다.

-열한 계단, 세 번째 계단, 불교_붓다 중에서_



글쎄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지 않을까 싶은 생각인데요...ㅋㅋㅋ 만약 채사장이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지금도 저러고 다니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기선 그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패션에 대해 대놓고 뭐라하지 않습니다. 다만 속으로만 하죠. 채사장이 얼마나 남들을 신경쓰지 않았는지, 세상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성찰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저는 이부분을 통해 그를 더 알아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안병장 이야기입니다. 채사장은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대를 갔습니다. 이런 저런 많은 생각과 상명하복식의 억압된 분위기와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허세로 가득한 군대가 그를 부적응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병사로 갔다면 관심병사로 찍힐 게 뻔했지만 장교라고 가장 일이 적고 부담이 없는 정훈장교로 발령이 납니다. 거기서 칼 마르크스, 니체와 같은 책을 사회로부터 들여와 읽는 안병장을 발견합니다. 안병장은 채사장으로부터 철학 이야기를 듣고 채사장은 그와 이야기를 하며 위로를 얻죠. 안 병장은 한 순간 순간을 의미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질없고 쓸떼없는 일을 하는 것만 같은 군대에 끌려와 시간을 잡아먹는 것도 부족한데 그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안병장을 보며 채사장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채사장은 그와 이야기를 더욱 많이 나누며 그가 "이상적인 인간 체 게바라"와 닯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 때문에 "때려 잡자 공산주의"라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요. 체 게바라는 그런 공산주의가 말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을 위해, 소외당하고 버림 받는 자들을 위해 함께 있어주고 함께 싸우는 자였습니다. 내일이면 전역해서 이제는 완전히 잊고 살아도 아무 상관없는 군대에서 안병장은 굳이 참가해도 되지 않을 훈련을 참가합니다. 그리고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 자들을 위해, 그는 싸웁니다.


병사들의 정신 상태 불량, 의욕없는 행동, 군인정신 부족에 대한 문제점들이 열거되었다. 손을 들고 일어선 안 병장의 심경은 복잡해 보였다. 평가가 정당하지 않음을 말하고 싶은 동시에 일개 병사로서 그런 말을 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고, 자신이 이렇게 말해서 무엇하나를 생각하는 동시에 자기 분대원들의 노력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그의 말은 잘 들리지 않고 어눌했다. 그는 몇 마디를 더 잇지 못하고 울었다. 남자들만 있는 군대에서 눈물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평가관은 당황했다. 그는 대대장님의 얼굴을 봤다. 대대장님은 처음 표정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안 병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상적인 인간이 울고 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저기서 울고 있다. 갑자기 그의 전투화가 보고 싶어졌다. 다닥다닥 붙어 앉은 장병들 사이에 있는 그의 전투화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의 전투화는 깨끗할 것이다.

-열한 계단, 여섯 번째 계단, 이상_체 게바라-



이 이후에 채사장은 공산당 선언, 티벳 사자의 서, 우파니샤드 등을 자신이 만난 인생의 변곡점으로 소개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채사장이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계속 상처를 받아 이제는 굳은 살이 많이 박혀 외부의 자극에도, 본인 스스로에게 무뎌져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내가 고민해 왔던 것과 비슷했고, 그가 내린 결론은 내가 내린 결론과 아주 같거나 아주 달랐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책을 참 잘 읽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는게 너무 아쉬웠고, 또 읽고 싶기도 하고, 이런 채사장을 개인적으로 만나 안 병장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당신 인생 변곡점은 어디였나요? 당신을 한 계단 앞으로 올라가게 해주는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저도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