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산 책

[소설] 쇼코의 미소

저는 요즘 들어 소설책을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2012년 영국 생활후 상식과 지식을 쌓기 위해 책, 팟캐스트등을 많이 접했지만 소설은 그 예외였습니다. 세상에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은데 소설을 읽는 것은 그냥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요즘 최근에 들어서야 소설책을 읽는 것이 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한 영화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재작년에 한 영화를 보고 저의 취향이 확 바뀌었습니다. 물론 꼭 이 영화때문이라서 그런게 아니고 저의 세계관이 조금씩 바뀌어져 가는 시점에서 터닝포인트 구간에 이 영화를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됐든 제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Wie im Himmel' 이라는 스웨덴 영화인데 한국에 '천국에 있는 것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다 보고 나서 참 느낀게 많았는데요. 나름대로 내 스스로 해석을 하게 여지를 주었고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과 감독의 의도, 나만의 결론,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다음부터 소설을 쓰는게 비문학, 자기계발서등을 쓰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걸 깨달았지요. 마치 작가는 자신의 의도와 세계관을 보물찾기 숨기듯이 숨기고 우리는 그 보물을 소설 안에서 찾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오랜만에 소설책 하나를 읽었습니다.



제목을 보셔서 알겠지만 최은영 작가님의 "쇼코의 미소"입니다. 정말 좋은 소설책을 만난 그런느낌이었죠.

2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이 기사에 한번 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을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작가들이 좋아하는 소설'로 이 쇼코의 미소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이북(e-book)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까먹고 있었는데 지금도 가끔씩 듣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작가가 직접나와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제가 원하는 모든 책이 이북에는 없지만 어쨌든 많은 책들을 아이패드에 넣어두고 볼 수 있어서 좋네요.ㅎㅎ

 

팟캐스트에서 작가로부터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별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썼는데 많은 사람들이, 또는 평론가분들이 책을 해석해 주는 것을 듣고 아 내가 그때 무의식적으로 그런 의도를 갖고 썼겠구나 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그분이 하신 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 작가분들은 보통 여러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놓고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자신의 의도와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그 해석을 존중해주고 받아주는 것들도 참 인상깊었습니다. 단지 최은영 작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쇼코의 미소는 여러개의 중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7편의 소설이 엮여있는데 그 중에 가장 첫번째 소설이 쇼코의 미소였습니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처음에 와.... 좋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편 '씬짜오, 씬짜오'를 읽고 와.... 더 좋네... 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 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읽고 와... 어쩜 점점 더 좋아지냐 라고 생각하며 정말 막힘없이 읽어나갔던 책이었습니다.


책은 말씀 드렸듯이 첫번째로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편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와 '한지와 영주' 였습니다.


모두가 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지만 구성을 서로 닮게 했다는 점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쇼코의 미소'는 일본인 친구와,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 가족과, '한지와 영주'는 케냐사람과,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폴란드 사람과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구요. 서로 언어가 달라 소통의 한계가 있는 것도 닮았습니다.


'쇼코의 미소'는 부분적으로 일본에서, '씬짜오, 씬짜오'는 독일에서, '한지와 영주'는 프랑스에서, '먼 곳에서 온 노래'는 러시아라는 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한 가지 더 있는데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 전쟁,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한국에서 있었던 간첩 조작 사건, '미카엘라'는 세월호 사건이라는 역사적으로 큼직했던 사건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영화도 그렇고 역사적인 사건을 그린 것들을 좋아하는데요. 작가 나름대로의 창작으로 그런 역사안에서 정말로 그렇게 살아갔을 법한 미시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 저에게는 정말로 좋았고, 그래서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편을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모든 소설의 이야기를 여기에 다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어둔 줄들을 발췌하려고 보니 단지 작가가 예쁘게 쓴 글귀 보다는 문맥속에서 적절히 잘 어울려진 의미있는 문장들을 좋아하다보니 여기에 그 문장만 써놓은다면 정말 이상해질 것 같네요.


두 편 정도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첫번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해옥이 어렸을때 친척이던 순애 언니가 부모를 잃고 해옥의 집에 얹혀 살면서 서로 정말 친자매처럼 가까워지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말 평범하고 알콩달콩 잘 살고 싶은 순애 언니는 착실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남편이 순애 언니가 임신하고 얼마되지 않아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순애 언니의 모든 꿈이 깨지죠. 오랜 생활동안 혼자 딸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해야하고, 자신과 딸은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딱지로 사회에서 겪는 고통 뿐만아니라 호된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석방되어 나온 남편. 그는 이제 오히려 더 큰 짐이 되어 순애 언니를 힘들게 합니다. 힘든 삶 끝에 결국 순애 언니는 천사가 되어 해옥을 찾아와 짧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해옥이 순애 언니를 한번 찾아가는데 그 만남에서 해옥은 더이상 순애 언니가족을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순애 언니는 해옥과 마지막 만남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해옥아, 잘 살아.

 엄마는 이모의 말을 알아듣고도 못 들은 척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엄마는 이모가 엄마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거기에 계속 서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해옥아, 잘 살아. 이모는 뭍에 걸린 배를 호수로 밀어내듯이 그 말을 했다.'


-쇼코의 미소,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에서-




두번째 소개할 편은 '한지와 영주'입니다.


영주가 유럽 여행을 하다가 프랑스에 있는 한 수도원에 장기 체류하게 됩니다. 그 곳 수도원에 오는 방문객들을 관리해주는 봉사자로 일을 하게됩니다. 수도원에 특히 방문객들이 많이 올때는 세계각지에 도와줄 봉사자들을 초대하는데 그 중에 한명이 케냐에서 오는 까만 피부의 한지입니다. '한지와 영주'는 사귀지는 않지만 연애소설 같은 느낌도 나고, 프랑스도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주와 한지 사이에서 나누는 서툰 대화에 섞여있는 감정들이 참 좋았습니다. 


서로 같이 산책을 가고,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한지가 먼저 영주에게 다가가고 영주도 그런 한지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그러다가 한지가 곧 다시 케냐로 돌아가야 할 때쯤 갑자기 영주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죠. 말도 섞지 않고, 인사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그렇게 헤어집니다.



' "영주, 나는 알아.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한지가 말했다.

"그래"

나는 내 노트 위에 나란히 놓인 '한지'와 '영주'를 바라봤다."



'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중에서-



제가 소개해 드리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최영은 작가가 쓴 이 소설의 모든 엔딩은 항상 우울합니다. 작가 본인 스스로도 우울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어렸을때부터 항상 불안함을 가지고 산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그것이 정말 가슴을 옥죄는 우울함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슬픔의 감정을 주면서도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만났고 참 좋은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강력 추천합니다.^^